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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大孝를 따르리라.........................(수주연34)

이름
:  정바오로신부  작성일 : 2003-09-04 10:05:44  조회 : 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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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8월 31일 연중 제22주일 ,
                                저의 졸필을 수원교구 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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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도회장  정약종(아우구스티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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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분을 모르시나요?

  성 정하상(바오로)과 정정혜(엘리사벳)의 부친이요 성 유조이(체칠리아)의 남편. 한국 최초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고, 최초의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남기신 분. 아니 그분을 설명하는 데는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다.

  초기의 순교 선조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순교의 용덕(勇德)을 보여주신 분.” 바로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이 그분이다.

  1760년(영조 재위 36년) 경기도 광주 땅의 ‘마재’(지금의 남양주시 와부읍 능내리)에 자리 잡고 있던 나주 정씨 집안의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집안의 학풍을 이어받으며 성장하였다.

  그의 집안은 1701년 무렵까지 중앙 정계에 발을 딛고 있었지만, 정쟁에서 밀려난 후 풍광 좋은 이곳 마재, 일명 ‘소내’라 불리던 마을로 낙향하여 살고 있었다.

  부친 정재원이 호조 좌랑에 발탁되어 다시 중앙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정약종의 나이 17세 때였으니, 이 무렵에 그의 집안이 다시 일어나게 된다.

  장성해가는 동안 정약종은 강직하면서도 세밀한 성품과 굳은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학문의 깊이를 더해 가게 되면서 ‘과연 이 세상에서 인간의 영혼을 영원히 구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기에 한때는 도교에 기울어져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선법(仙法)을 연구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허무맹랑한 술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또다시 고민에 빠진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때 이미 둘째 형 약전과 아우 약용(요한)은 천주교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1784년 겨울에는 최초의 세례식에도 참석하여 교회 창설에 앞장서고 있던 터였다.

  형 정약전은 아우 약종이 진리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을 알고는 어느 날 아우와 마주앉아 넌지시 천주교 교리를 설명해 주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회의를 가졌던 정약종이었지만 얼마 안 되어 자신의 무릎을 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바로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이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을 구하는 양약(良藥)임에 틀림없어.”

  그날부터 정약종은 사랑방에 틀어박혀 형이 구해 준 교회 서적을 깊이 이해하는 데 몰두하였고, 얼마 안 되어 그는 주님의 크신 은총으로 진리의 길을 환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그 길로 나아가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권일신을 대부로 삼아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으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천주교에 대한 자신의 회의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망설임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부친 정재원은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천주교 신앙에 빠져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타이르고 위협하면서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약종의 신앙 스승이자 둘째 형인 약전이 먼저 교회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당시 교회 지도층 신자들이 임의로 조직한 ‘모방 성직자단’(일명 
가성직자단) 안에서 신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또 아우인 약용(요한)도 부친의 반대에 부딪히자 신앙생활에 머뭇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어찌 진리의 길을 마다할 수 있으랴. 물론 고민은 있었다. ‘어버이에 대한 효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더 ‘크신 어버이’(大君)이신 하느님께 대한 ‘큰 효’(大孝)를 택할 것인가?’

  여기에서 그는 서슴지 않고 ‘큰 효’(大孝)의 길을 선택하였다. 

                                                             
                                          구산 성지 주임 정종득(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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