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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를 주님께!....................(수주연42)

이름
:  정바오로 신부  작성일 : 2003-10-25 13:59:08  조회 : 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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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26일  연중 제 30주일.
                                저의 졸필을 수원교구 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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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운 나이를 주님께!

                                    *** †심아기 (바르바라) ***


  우리의 순교사(殉敎史) 중에는 꽃다운 나이에 가녀린 아녀자의 몸으로 순교의 칼날 아래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주님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수 없이 많다. 이번에 이야기할 심아기(바르바라)도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그리스도 오직 한 분 뿐이시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이 참스승에게로 인도하는 작은 신앙의 스승들이 있는데, 심아기에게는 그녀의 오빠와 성인전(聖人傳)이 그 작은 앙의 스승이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1783년에 태어난 심아기는 오빠(심낙훈)를 통해 입교하였고, 성인들의 생애를 그린 신앙서적으로부터 자신의 신앙관을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신앙의 스승인 성인들의 위대한 신앙의 모범에 감동을 받은 그는 혼인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자기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1800년 오빠 심낙훈이 서울 벽동으로 이주하였을 때, 심아기도 모친과 함께 오라버니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주하였다. 그가 이사한 집은 마침 열심한 신자 정광수(바르나바)·윤운혜(루치아) 부부의 집과 이웃해 있었는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 부부와 어울리면서 교회 일을 도울 수 
있었다.

  또 교우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가질 때면, 심아기도 여기에 참석하여 교리를 배우고 익히게 되면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신앙의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1801년의 신유박해로 오빠가 체포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정한 오누이 사이이며, 또 서로가 신앙의 힘을 북돋아주었던 사이였기에, 심아기는 오빠의 체포를 자신을 순교에로 초대하는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오빠가 체포 된 후 어느 날 심아기(바르바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오빠가 함께 순교하자고 하면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하였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바로 그날 포졸들이 들이닥쳐 ‘집안에 있는 젊은 천주교인 여자를 잡으러 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당신들이 분명 잘못 알고 온 것이오. 여기에는 아무도 없소’하면서 심아기를 보호해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포졸들은 아주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결코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녀를 찾으려 하였고, 나중에는 사람들을 위협까지 하였다.   

  심아기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던 순교의 때가 왔음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다가가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제가 천주 성의(聖意)에 순종하도록 버려 두십시오”라고 말한 뒤, 자진하여 포졸들 앞으로 나아가서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런 다음 심아기는 포졸들의 명에 따라 그들을 따라갈 준비를 하고 아무런 동요됨 없이 옷을 갈아입은 후 서울로 압송되었다. 

  심아기는 포도청에서 모진 형벌을 받았으며,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았고 수많은 유혹을 당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매를 맞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속되는 형벌 속에서도 그녀의 신앙은 더욱더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더 이상 그 형벌을 이겨낼 수 없었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접으려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영광스런 순교의 화관(花冠)을 받게되니, 때는 1801년 4월 초로 당시 그녀의 나이 꽃다운 열 여덟 이었다. 그녀가 순교한 후 집안 식구들이 시신을 거두는데, 놀랍게도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
며 그 육체는 살아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싱싱하였다고 한다. 

  반면에 심아기에 앞서 체포된 오라버니 심낙훈은 포도청의 형벌을 받는 가운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하였고, 끝내는 ‘천주교 신앙을 이미 저버렸다’는 말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4월 10일 형조의 판결을 받고 무안으로 유배되었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이렇듯 애석하게도 남매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심아기가 매를 맞다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오라버니 심낙훈은 형조의 박해자들 앞에서 이렇게 진술하였다.

  “저는 제 누이 바르바라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가르쳐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죽게 하였는데, 누이는 끝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심아기(바르바라)의 끝없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순교와 동정(童貞)의 두 가지 화관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하였다. 

  나는 이 다음 주님 대전에서 어떤 화관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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