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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못다 이룬 순교사를 완성해 나가면서.... (수주연30)

이름
:  정바오로신부  작성일 : 2003-08-01 10:47:23  조회 : 6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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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7월 20일 연중 제17주일 ,
                                저의 졸필을 수원교구 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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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상문. 세바스티아노

                    *** 부친이 못다 이룬 순교사를 완성해 나가면서  ***


  주보의 순교사 연재를 처음 시작하면서 교회 창설 주역의 한 분이었던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신앙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1791년의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 했지만, 칼날 아래 죽음을 얻지 못하고 유배를 가다가 선종한 그분이다. 그때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 생애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도 그분이 이루지 못한 순교사를 아주 애석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애석한 권씨 집안의 순교사가 그 자녀 대에 와서 완성을 보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이제 그 권씨 집안의 순교사를 처음으로 완성시킨 권일신의 아들 권상문(세바스티아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아울러 조숙(베드로)과 동정 부부로 살다가 1819년에 순교한 권 데레사가 바로 권상문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도 일단 언급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은 1769년 경기도 양근의 한감개(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권일신과 광주 안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훗날 같은 남인 출신인 오석충의 딸과 혼인하여 ‘황’과 ‘경’ 두 아들을 두게 된다.

  또 그 당시의 풍습에 따라 백부인 권철신(암브로시오) 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권상문의 어머니 안씨는 저 유명한 실학자 안정복의 딸이었는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에 는 친정아버지로부터 의절을 당한 채 한평생 친정과 담을 쌓고 살아가야만 했었다.

  그러니 권상문도 외할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을 수는 없었으리라.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은 일찍부터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 훌륭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1784년 부친이 교회를 창설할 당시 그의 나이 열여섯 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학문이 쌓여진 바탕 위에 신앙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후 그는 열심히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이웃에 사는 윤유일
(바오로)·유오(야고보) 형제을 비롯하여 몇몇 교우들과 함께 기도 모임을 갖거나 교리를 연구하였다.

  1791년의 신해박해는 한감개 권씨 집안에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 이때 생부인 권일신이 죽임을 당하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은 마음이 약해져 한때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뒤로는 다시 신앙을 회복하였고, 서울로 올라가 성사를 받기도하였다. 또 얼마 후에는 고향인 양근으로 돌아와 살면서 지방으로 피신해 다니던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집에 유숙시키기도 하였다.

  1800년 6월 양근에서 일어난 박해로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은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양근과 경기감영을 오가면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신앙을 증거 하였다.

  그런 다음 1801년의 신유박해가 한창일 무렵에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때 권상문은 잠시 마음이 약해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전에 한 말을 취소하였으며, 끝없이 가해지는 형벌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증거 하였다. 그러자 형조에서는 그의 최후 진술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하였다.
 
  “생부 권일신이 사망한 이후에도 천주교에 깊이 빠졌으며, 요사한 말과 글을 지어 오로지 대중을 미혹시키는 데 이용하였다.”

  동시에 형조에서는 ‘권상문을 고향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 양근 주민들이 천주교에 빠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그는 1802년 1월 30일(음력 1801년 12월 27일) 양근 형장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이렇게 하여 양근 권씨 집안의 순교사는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구산 성지 주임 정종득(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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