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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주보 연재 5.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3]

이름
:  정종득 신부  작성일 : 2003-02-21 16:08:30  조회 : 6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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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2일 주님봉헌축일에 주보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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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벽(요한)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3-  ****


  먼저 이 말을 하고 싶다. 역사에는 풀리지 않는, 아니 인간의 한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고. 그 진실은 하느님만이 아실뿐이다.

  권일신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이 일곱 번째에 이르자, 이렇게 진술했다고 한다. "천주교 신앙은 공맹(孔孟)의 학문과 달라 인륜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지 않으므로 사악한 학문[邪學]입니다." 과연 이러한 대답을 이끌어낸 형관의 질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알 수 없으니, 권일신의 본뜻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는 있다. 이후 형조에서 임금에게 보고한 내용 가운데 "혹독한 매질을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끝내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사악한 학문'이라는 한 마디를 자복 받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우므로) 그 실체는 계속 추궁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보면 권일신은 진정으로 배교한 것이 아니요, 그의 진술 또한 신앙을 모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일신은 임금의 명으로 사형은 면하고 제주목(濟州牧)으로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 또 이후 형조에서 '권일신을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하였다'고 보고하자, 임금은 그의 유배지를 제주가 아니라 호서(즉 충청도)로 바꾸도록 명하였고, 그는 그곳으로 출발한 직후 사망하고 말았다. 형벌로 인한 장독(杖毒) 때문이었다.
 
  교회사가들은 권일신의 마지막 생애에도 의문을 품고 있다. '살고자 했다면, 왜 배교를 택하지 않았는가?' 그 해답 또한 영원히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윤리신학에서의 '반성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이 의심스럽다고 한다면, 유리한 것은 확대 해석하고 불리한 것은 축소 해석하라."

  그 후 권일신의 시신은 고향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1년 11월 형 권철신의 유해와 함께 발굴되어 천진암으로 이장되었다. 또 이보다 2년 전에는 포천 선산에 안장되어 있던 이벽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그 유해도 천진암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우리 수원교구의 순교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 분의 죽음은 이후 모든 순교자들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교회의 순교에 대한 평판이 어찌되었던 우리는 그분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첫 번째 모퉁이 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점을......



                            ******* 권철신,일신형제의 묘터를 찾아가는
                                                            답사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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