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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묘소와 순교자 공경

이름
:  정종득(바오로) 신부  작성일 : 2002-05-03 15:36:33  조회 : 4697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순교161주년 현양미사에 참여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그리고 기도와 성원을 해주신 분들께도 또한 감사합니다.

아래의 글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소> 명예소장이신 최석우 안드레아 신부님의 <기념사 전문>입니다.




제목 : 순교자의 묘소와 순교자 공경에 대하여...


오늘 김 안토니오 성우 성인의 순교 기념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그 분의 묘소 앞에 모여 주교님과 더불어 미사성제를 올리며 그분께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교자 공경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고 근 2천년의 역사를 가진 가톨릭 교회의 가장 오랜 전통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과연 가톨릭 교회에서 순교자 공경이 언제 시작되었고 또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한국교회의 순교자 공경과 비교하면서 좀 말씀드릴까 합니다.

순교자 공경은 4,5세기에는 정해진 축일에 따라 전 교회적으로 진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마는, 지역교회에서는 벌써 2세기 말경부터 공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순교자를 갖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서는 그 순교자가 처형된 날을 택하여 시내 밖에 있는 순교자 묘소에 모여 그들의 주교의 지도하에 순교자에 대한 공식적인 공경, 다시 말해 전례 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때 무덤에서 행해지는 것은 주일에 시내에 모여서 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만, 미사 전에 순교자의 수난 기록이 있으면 그것을 낭독하고 이어 주교가 순교자에 대한 찬사를 덧붙였고, 기도 때에는 순교자의 고귀한 죽음이 기억되고 순교자에게 필요한 전구를 간청하는 등 고유한 것도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물론 지역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합니다만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대체적으로 비슷하게 본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신자들은 1년에 한번 밖에 없는 이와 같은 공식적인 순교자 공경만으로는 만족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때에도 개인적인 동기에서, 예컨대 집안에 우환이 있을때 순교자의 특별한 전구를 간청하고자 순교자의 무덤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사적인 성묘에서 그들은 친척이나 조상에 묘소에서 관례적으로 하는 것처럼, 순교자의 무덤을 꽃과 촛불로 장식하고 무덤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공공으로 식사를 했는데, 그 때 특히 그들은 그 죽은 자도 식사 손님으로 초대되어 같이 식사한다고 생각하며 죽은 자와 생전에 가졌던 유대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와 비슷합니다만 우리는 보통 죽은 자에 대한 기억에 그치고 그와 대화하고 유대를 유지하려는 믿음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식적이건 사적이건 고대의 신자들이 순교자의 묘소 앞에서 행하던 순교자 공경심에는 두 가지 관념 아니 믿음이 그 근거를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순교자는 무덤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생존해 있고 또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고 또 하나는 동시에 그러나 그는 천상의 하느님 곁에서 영광을 누리면서 자신의 보호가 필요한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전구를 하고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오늘의 현대인에게도 전혀 생소한 체험은 아닐 것입니다.

순교자 공경은 무덤과 이렇게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무덤이 없으면 공식적인 공경도 사적인 공경도 없었습니다.그런데 순교자들의 무덤은 처음에는 종종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졌다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잊혀진 무덤들은 역사가들의 연구를 통해 다시 발견되거나 확인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물론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순교자에 대한 공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순교자들의 무덤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대부분은 잊혀졌고, 알려진 것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마저도 박해시대의 용감한 교우들이 목숨을 걸고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주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은 잊혀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의 경우처럼 아무리 목숨을 걸고 시신을 거두려 했을지라도 당국의 감시가 워낙 심해 실패한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우리 김 안토니오 성우 순교자의 시신은 그의 순교 후 다행히 그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이곳 구산 고향에 매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김 성우는 1925년에 복자 위에 오르게 됨에 따라 2 년 후에는 발굴되어 용산 신학교로 이장되었고 현재는 절두산 지하묘에 안치되어 순례자들의 공경을 고 있습니다. 1927년 당시 유해 발굴작업을 담당하였던 서울교구의 라리보보좌 주교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유해를 답사하고 확인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의 가족과 그가 매장되어 있는 마을의 고향 교우들은 언제나 그의 무덤을 알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매우 잘 보존된 지석이 묘소 앞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의가 제기되었다 하더라도 의혹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족과 이곳 교우들 덕분에 여기서 그의 공경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모일 수 있게 된 것도 그분들의 덕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동의하시면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어떤 교구에서 순교자의 무덤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 교구는 위급한 경우에 호소할 순교성인이 없고 유력한 전구자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쓰라린 공백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러한 교구들은 부득이 진짜 순교자 무덤에서 흙이라도 파오거나 또는 순교자 무덤 위에 잠시 놓아 두었던 천들을 가져오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구책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사실은 '무덤의 접촉 물' 에 불과한 데도 이른바 순교자의 이전으로 과장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시대 사람들도 그것을 순교자들이 있는 교구에서 순교자가 없는 교구에 순교자 하나를 선사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곳 구산에는 김성우 성인의 묘만이 아니고 그의 친척이나 형제로 추정되는 몇기의 순교자 무덤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제에 순교자의 무덤이 없는 교구에 한기 쯤을 선사하면 어떨까요?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10여는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희 연구소로 어떤 교구장 주교가 찾아와서는 제게 어떤 순교 성인이 자기 교구 출신인데 그 무덤이 경기도 모처에 있다는데 그것이 그 성인의 묘가 틀림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그 주교가 그 순교 성인의 묘를 찾아 그것을 자기 교구로 옮겨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문론 사전에 주교들 사이에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는 하지만 급히 옮긴 것으로 미루어 어딘가 석연치 않은데도 없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던 이것은 순교자의 묘를 소유하지 못하는 교구의 비통함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보면(23, 29-31),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네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화사하게 꾸며 놓고는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떠들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간접적으로 당시 무덤에서 행해지던 성인 공경에도 언급하셨습니다.

언뜻 듣기에 예수님이 유대인의 성인 공경에 반대하신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거기에서 그런 뜻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그들의 처신에서 모순되는 것, 위선적인 것, 다시 말해 그들은 한편으로는 예언자들과 성자들의 무덤에 지극한 공경을 바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일 같이 시간마다 그 정신을 거슬러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셨을 뿐입니다. 우리말에 이렇게 겉으로만 꾸미고 실속이 없는 것을 표현하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허례허식입니다. 그리고 요즈음 한국교회가 "외화내빈" 즉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빈약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그런 유의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이 순교자 공경 행사가 일상의 신앙생활로 이어져 무엇인가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바로 이 행하는 허례허식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원합니다.




순교자체득학교 제1기를 마치며......
빛바랜 사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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