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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주보 연재 2. [순교사의 차례와 공간]

이름
:  정종득 신부  작성일 : 2003-02-18 18:28:39  조회 : 6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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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2일 [주님 세례 대축일]에 연재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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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원교구 안에서 '순교자’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성 김 대건(안드레아) 신부와 그의 부친 성 김 제준(이냐시오), 천진암의 강학회 주역, 남양의 김 필립보 부부, 죽산의 무명 순교자들, 남한산성의 무수한 순교자, 안양 수리산의 성 최 경환(프란치스코)과 순교자 이 성례(마리아), 구산의 성 김 성우(안토니오) 등등.

  그러나 '순교자'와 관련한 것이 어디 이뿐이랴?
성 앵베르(라우렌시오) 주교가 마지막으로 은거하던 화성의 송교(제부도 앞마을), 성 볼리외(루도비코) 신부와 성남 묘론리의 동굴,  성 정 화경(안드레아)과 성 장주기(요셉)의 고향 양감, 성 한 이형(라우렌시오)과 양지의 은이. 또 성 민 극가(스테파노)가 교사로 활동했던 왕림(갓등이), 성 이 문우(요한)와 순교자 정은(바오로)의 탄생지인 이천의 단내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박해 시대의 수많은 비밀 신앙 공동체들, 그 이후에 형성된 옹기점, 숯막, 퉁점교우촌들....

  그 밖에도 앞으로 시복 시성이 되어야 할 순교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미 주님의 품안에서 천상의 영광을 누리고 계시는 그 분들께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그분들의 숭고한 순교의 용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신앙을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큰 교훈이 되겠기에, 여기에 수록되는 그분들의 행적이 시복 시성 작업과 그 분들께 대한 자발적인 기도와 현양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 지면을 통해 그들의 삶과 신앙에 대해 차근차근 정리를 해 나가고자 한다. 이 글의 순서는 먼저 신유박해(1801년) 이전의 초기 교회 상황과 순교 선조들, 기해박해(1839년)ㆍ병오박해(1846년)와 신앙의 흔적, 병인박해(1866년)와 순교자 현양, 그리고 박해 이후 신앙의 남은 자리들 순으로 이 글을 이끌어갈 것이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함께 이 글을 이끌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모든 신자들이 함께 공부해 가면서 그 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우리 자신의 성화를 위해 노력할 때 그 분들의 삶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족을 달자면, 필자의 능력과 표현의 미흡함으로 과연 우리 순교사의 공간을 제대로 메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고, 또 신앙의 자유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박해시대의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신 순교 선조의 신앙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곳 구산성지에 공간적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김 성우(안토니오) 성인께서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증언한 최후의 신앙 고백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어 본다.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오.”  (이 글은 순교자들이 수집하고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정리하고, 최 양업 부제가 라틴어로 번역한 바로 그 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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