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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오직 大君大父만 가득합니다..(수주연36)

이름
:  정바오로 신부  작성일 : 2003-09-17 14:04:51  조회 : 7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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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
                                저의 졸필을 수원교구 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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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도회장 정약종(아우구스티노) ③


              ****  <내 마음, 오직 大君大父만 가득합니다.> ****


  1800년 4월과 5월, 여주와 양근에서 박해가 일어나 신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회장은 양근 분원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가족들과 함께 한강 물길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이주하였다.

  그런 다음 청석동에 있는 궁녀 출신 문영인(비비안나)의 집을 빌려 살다가 아우 정약용의 도움을 받아 남대문 안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후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데 더욱 열중하였다. 기도와 교리 연구 모임들을 활성화해 나가는 데 주력하면서 주문모 신부를 도와 교회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이미 환난은 예고되고 있었다. 남인들을 보호해 주던 재상 채제공은 이미 1799년에 사망하였고, 다음해에는 정조 임금마저 승하한 터였다. 이제 정권은 완전히 박해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의지할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1801년 1월 10일. 어린 순조 임금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던 대왕대비 김씨(정순왕후)의 이름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윤음이 선포되었다. 신유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로 부터 9일 후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군사와 포졸들에게 임대인(토마스)이 체포되면서 그가 황사영(알렉시오)의 집으로 옮겨 숨기려 했던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의 책 상자가 압수되고 말았다.

  책 상자 안에는 여러 가지 교회 서적과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이 주고받은 각종 서한들, 그리고 그의 일기와 성물들이 들어있었다. 박해자들은 좋아라하였다.

  그들이 증오하는 남인과 천주교 신자들을 얽어맬 수 있는 증거가 수두룩하였기 때문이다.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은 2월 11일 금부도사에게 체포되어 곧장 의금부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이가환과 이승훈, 그리고 그의 아우 정약용이 끌려와 있었고, 가장 먼저 체포된 최필공 형제와 최창현 회장도 그곳에 갇혀 있었다.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은 체포된 이튿날부터 혹독한 추궁을 당해야만 하였다. 추상같은 문초가 계속되고 신장(訊杖, 형문이 끝나면서 하는 매질)이 이어졌다.

  책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각종 물품들에 대한 해답도 요구되었다. 그러나 회장의 대답은 초지일관 ‘모른다’는 것 뿐이었다.  이유도 없었고 변명도 없었다. 

  “천주교 교리는 대단히 공정하고 지극히 올바르며 아주 진실 된 도리이므로 비록 만 번을 죽더라도 조금도 뉘우칠 마음이 없습니다. ‘천주를 높이 받들고 밝히 섬기는 일’[對越 昭事]을 가지고 어찌 그르다 하리요. 천주는 천지의 큰 임금이요 큰 아버지[大君大父]입니다.

  천주를 섬기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천지의 죄인이며,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용감하고 웅변적인 호교론(護敎論)이란 말인가!

  박해자들은 오히려 주눅이 들어 어찌해 볼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흔히 쓰는 판결, 즉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을 범상부도(犯上不道)의 죄인으로 몰아붙이면서 “한없이 흉악하고 지극한 패륜아로 하루라도 하늘과 땅 사이에 놓아둘 수 없다”는 미명 아래 1801년 2월
26일(양력 4월 8일) 참수형을 선고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은 당일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42세였다.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에게는 그토록 고대하던 영광의 순간이었다.

  이제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원한 부활로 이어지고 있었다.  번쩍이는 칼날이 한 번 스치자 머리와 목이 반쯤 잘려 나갔다. 아우구스티노 회장은 벌떡 일어나 앉아 다시 한 번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무토막에 목을 드리우지 않고 몸을 돌려  하늘을 보면서 외쳤다.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바라보며 죽는 것이 낫다.”  그리고는 마지막 칼날을 받았다.




                              구산 성지 지기    정종득(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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