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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수주연41)

이름
:  정바오로 신부  작성일 : 2003-10-25 10:54:53  조회 : 8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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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19일  연중 제 29주일.
                                저의 졸필을 수원교구 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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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전자전(父傳子傳)!

                                *** †정철상(가롤로) ***


  이제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의 맏아들 정철상(가롤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1782 년 무렵 경기도 광주의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정철상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繼母)인 유조이(체칠리아) 성녀의 품에서 자랐다.

  유조이의 너그럽고 자상한 성품 덕택으로 올바른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는 더하여 조선천주교회의 교부라고 할 수 있는 순교자인 아버지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철저한 신앙교육, 교우의 모든 본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 아주 훌륭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1791년 제사 문제가 발생하자, 정철상(가롤로)은 부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을 따라 한강 건너편에 있는 양근 분원(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는 집안 어른들이 그들에게 강제로 제사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또 천주교를 버리도록 자주 종용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철상은 이후 이곳에서 아우 정하상(바오로) 성인과 여동생 정정혜(엘리사벳) 성녀를 보
게 된다. 

  집안 어른들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정철상(가롤로)의 가족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집안 어른들과의 어려움은 더욱 커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집안의 어른들이 그를 불러 “너는 사학쟁이이므로 주가(周哥=주문모 신부)놈이 있는 곳을 알 터이니,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 사실대로 대라”고 하면서 송곳으로 찔렀다.

  그러나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천주를 공경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천주를 사랑하는 데만 힘썼던 것이다.

  그 무렵 정철상은 포천의 신자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성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던 중 신유박해(1801년)가 발생하였는데 이때 정철상의 나이는 20세 쯤 되었다. 그는 부친과 숙부들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 옥고를 치르자 옥 근처에 머물며 그의 아버지가 순교하는 날까지 옥바라지를 하며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옥바라지를 하는 정철상을 본 관리들은 그에게 주문모 신부의 사정을 아는 대로 알릴 것과 신부가 어디에 피신하여 있는지 말하라고 독촉하
며, 그것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며 유혹하기를 수 없이 했다. 

  그 많은 유혹 앞에서 그는 얼마나 가슴 저리고 아파해야만 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갈등과 번민을 해야만 했을까? ‘한번 자백해서 아버지를 옥에서 살려내고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한번만 밀고하고 더 하느님을 사랑하면 봐주시지 않을까?’, ‘아니야.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이런 수 없는 자문자답의 고뇌에서 그가 세상에 대해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앙과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었다. 
아버지인 정약종이 순교하던 1801년 4월 8일, 정철상(가롤로)마저도 의금부의 명에 따라 체포되어 형조에서 문초를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교회에 해가 되는 이야기는 그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며,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엉뚱한 이름을 꾸며내어 진술하기도 하였다.

  이제 그의 오직 한 가지 소원은 자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었다. 이러한 강렬한 원의를 가진 그에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를 천주로부터 떼어 낼 수 있는 유혹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를 도저히 배교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형조의 관리들은 그를 한 달 이상 옥에 가두어 둠으로써 혹독한 고통을 받도록 했다. 그 후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 그는 순교하고자 하는 소원대로 아버지가 순교한 서소문 밖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다.
 
  그러나 정철상(가롤로), 그는 아버지를 따라 순교의 영광을 얻었지만 부인과 아들을 남겨 놓고 떠나야만 했기에 그가 떠난 빈자리로 가족은 극도의 빈궁 속에서 살아야했다.

  그렇지만 훗날 주님의 대전에서의 다시 만남을 생각하며 그의 가족들은 희망을 가졌다.



                                            구산성지 주임 정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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