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2월 9일 연중제 5주일 주보에 연재된 글입니다. ***************************************************
*** 세 번째야 비로소 문안드립니다.***
오늘은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만나던 대감마을로 향한다. 공식적인 주소로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이다. 권철신. 일신 형제의 무덤이 있던 대감마을. 물어물어 가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길이다. 기대감과 긴장감은 답사가 주는 또 다른 묘미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감흥은 또 어떨까? 두리번두리번 여기가 아닐까? 지도 보기는 또 얼마나 밥 먹듯이 하는지......
대낮인데도 주변은 적막하다. 비닐하우스에서 나물 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본다. 잘 모른다며 "저 아래 마을 복덕방에 이장님이 있으니 가서 물어 보슈"한다. 이리저리 찾던 중 벽돌로 지은 시골의 전형적인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대석리라고 쓰인 글이 보인다.
옛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묘터는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수없이 누구에게든 물어봐야 하는데 하도 세상이 각박해서 얻고자 하는 답을 제대로 얻을 수는 있을런지... 그래도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데. 어느 집 문을 두드려 본다. 건장한 청년이 나와 뜻밖에도 친절하게 권씨 문중의 산소를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그가 가르쳐 주는 산의 모습을 공책에 대충 스케치하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불쑥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왜 오셨수? 뭐하는 사람이유?"하고 호기심을 보인다. 답사를 다니다보면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다. 이럴 때 나는 가톨릭 신부라고 말하기보다는 이 분야에 관심이 있어 답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야 그 동네의 인심이라든가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이곳으로 시집와서 40년간을 살았단다.
성함이 뭐냐고 물어보니 선선히 안영호라고 말해준다. 생면부지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요즘 세상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 이래저래 아직은 농촌의 인심이 푸근히 남아있음을 볼 수 있어 기분이 흐뭇해진다. 산세를 보니 한 눈에 들어오는 봉우리가 있다.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우뚝 하고, 이웃 봉우리들의 수장 같으면서도 거만해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른 봉우리와 어우러지면서도 뛰어나 보이는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가 권철신. 일신 형제의 묘터(1981년 천진암성지로 이장)가 있는 곳이란다. 이웃 봉우리들을 감싸 안은 능선의 모양이 권일신 어른의 마음같아 가슴이 뭉클하다.
산에 오르려고 하니 동네 아저씨가 구제역 지역이니 이쪽 말고 저쪽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소를 키우고 있나보다. 그가 알려준 길로 산에 오르니 사람이 닿았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막막하다. 그러나 어딘가에 길이 있겠지 하며 풀숲을 이리저리 헤매는데, 풀들은 어깨를 넘는다. 아직 5월 중순인데도 땀은 비 오듯 한다.
안경을 벗고 흐르는 땀 닦기를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길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만난 기쁨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름길이 있었는데 구제역 덕분에 고생을 좀 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쉽게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한참을 쉬고 나서 묘소를 둘러본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도 횡행하여 마음이 무겁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함께 갔던 일행이 "신부님 여깁니다"하고 소리를 친다. 오! 천만다행이다. 만일 혼자 왔더라면 그분들의 무덤자리도 아닌 곳을 그분들의 묘터라고 단정 지었을 뻔했다.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날이기도 하다.
50여 미터를 더 올라가니 권철신, 일신형제 묘의 이장한 흔적과 부친의 묘소가 나온다. 너무도 반갑다. 표식에는 세분의 성함, 세례명, 생몰연대가 적혀있다.(부친은 천주교 신자가 아님) 25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살으셨던 분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말씀 없이 말을 하신다'. 당신들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주님, 선조신앙인의 마음으로 옮아가고 싶습니다!"하는 간절한 마음의 기도를 올린 후 내려가려는데 권일신 순교자가 허리춤을 잡는다. 나 역시 못내 아쉬움이 컸던 차라 30여분을 더 묘터와 주위를 둘러보며 그분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본다. 그리고 권일신 순교자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