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성모 신심은 매우 깊고 뜨거웠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신앙 선조들은 묵주기도를 쉼 없이 바쳤다. 성모 신심의 한 표현인 묵주기도는 박해시기부터 우리의 영성 안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해 시대의 선교사였던 앵베르 주교님과 다블뤼 주교님은 조선 교회에 묵주기도와 성모신심을 전파하는 데 큰 공헌을 하셨다. 가난했던 앵베르 주교님은 신학생 때부터 묵주를 만들어 팔아 학용품과 신학교 생활비를 할 정도였으니, 그의 묵주 만드는 기술은 조선 선교사로 와서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블뤼 주교님은 선교사 중 가장 성모신심이 깊으셨다. 고국인 프랑스에서는 물론, 선교지인 조선에 와서도 항상 그의 곁에는 묵주가 있었고 성모님과 함께 생활하셨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감옥에서나 순교의 형장으로 나아갈 때, 성사를 받으러 먼 길을 떠날 때에도, 언제 어디서나 항상 묵주기도를 바쳤다. 묵주는 자신의 몸의 일부요 삶이었다. 이처럼 묵주는 천주교인의 증표였다.
당시 김기호 회장은 귀중한 묵주를 성모님 공경의 ‘보물’로 여기며 평생 인패(印佩)로 삼았다. 봉교자술(奉敎自述)은 이렇게 전한다. 김기호 회장은 ‘성모님을 공경하는 데에는 매괴신공(??神功)을 정성껏 하는 것 외에 더 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의무 축일이면 다른 일을 제치고 평상시 5단을 염하던 것을 15단을 바쳤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노는 몸이라 몸의 편함을 취하였다. 그 보속을 위하여 날마다 매괴 15단을 염하기로 성모 대전에 허원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궐하지 아니하였다’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성모님께 고백하며 자신을 바쳤습니다.
하루는 주교님이 그에게 “이것이 네가 처음 영세할 때 갖고 있던 묵주냐?”고 물으셨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주교님 말씀하시기를 “너를 위하여 지극히 귀중한 보물이다. 서양에서는 영세 때의 묵주를 모두 귀중히 여겨 죽을때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염할 때 관 속에 넣어준다. 하물며 너의 묵주는 군란을 겪은 묵주가 아니냐? 성모께서는 너의 공로를 가상히 여기시어 연옥에 있지 않게 하실 것이다”하셨다.
“진실한 천주교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지극히 능하신 전구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달레 상 p.452)
‘거룩한 묵주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복되신 성모님의 묵주는 저희를 하느님께 묶어주는 아름다운 사슬이며, 저희를 천사들과 결합시켜 주는 사랑의 끈입니다. 묵주기도는 지옥의 공격을 물리치는 구원의 보루이며 모든 난파선이 찾는 안전한 항구입니다. 저희는 묵주기도를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묵주는 저희에게 위안이 될 것입니다. 묵주의 모후이신 성모님, 저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감미로우신 성모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사랑의 우리 어머니 죄인들의 피난처 슬퍼하는 이들의 위로자이신 성모님 오늘 영원토록 하늘 땅 어디에서나 찬미받으소서. 아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중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바로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통하여 성모님의 학교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그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통하여 풍성한 은총을 얻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는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저의 모든 근심을 묵주기도에 의탁하였으며, 그 안에서 저는 언제나 커다란 위안을 얻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구산성지의 은총의 모후 묵주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이면서도 잘못 살았던 지난날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청하십시오.받을 자격 없는 우리 죄인에게 주신 주님의 큰 은총에 감사드리십시오. 그리고 성모님처럼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로 결심하십시오. 은총이 필요한 자신과 모든 이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주님! 당신의 큰 은총으로 저를 감싸 주소서. 아멘.
구산 성지의 묵주의 이름은“은총의 모후 묵주”입니다.
‘은총의 모후 묵주’라고 명명한 이유는 첫째, 늘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기를 갈망하고, 또 그렇게 은총 중에 사셨던 구산성지의 순교자들처럼 이곳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에게도 이 묵주기도를 통해 주님 은총 안에 살아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총의 모후 묵주’라 지었습니다. 둘째, 구산성지의 또 다른 이름이 ‘은총의 성지’이므로 그 특성을 살려 ‘은총의 모후 묵주’라 지었습니다.
구산 성지의 묵주알은 <새우젓 항아리> 위에 <묵주알>을 얹은 형태이다. 이는, 박해시대 교우들의 생업 중 하나인 <새우젓 장사>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교우들의 생업은 옹기 장수, 옹기가마 일꾼, 담배 농사, 화전, 방물 장수, 짚신 장수, 새우젓 장수 등이었다. 순례자들이 새우젓 항아리 묵주를 통해 신앙선조들의 얼을 되새기고 그분들의 영성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Sketch Story 묵주알 도안이 각각 다르던데 설명해 주세요?
* 묵주알은 신앙 선조들의 삶이나 교회사에 관련된 그림을 바탕으로 하고 그 속에 십자가 모양의 꽃인 <갯무 꽃>을 살짝 올려놓았다.
* 모든 묵주알 속에 있는 갯무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한두해살이 풀로서 재배하는 무가 야생화된 것이다. 갯무는 완벽한 십자가 모양을 띠고 있으며, 한 꽃잎 속에 분홍색과 흰색, 십자가 모양이 나온다. 두 개의 십자가를 자세히 보면 큰 십자가인 예수님 십자가에 작은 십자가인 내 십자가가 한 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꽃을 만나고 얼마나 기뻤는지 하늘에 닿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꽃의 이름도 직접지었다. <십자가 꽃>이라고……
서른 번째 묵주알 (성모송 한 번)
Sketch Story 주교님 묵주알
주교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주교님의 관과 오색 묵주알로 만들었다. 특히 조선 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님과 5대 교구장이신 다블뤼 주교님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묵주 만드는데 장인(匠人)이셨던 분, 가난해서 신학생 때 묵주를 만들어 학용품을 사며 생활했던 앵베르 주교님!
조선의 성모 신심에 절대적인 공헌자, 성모님과 뗄 수 없었던 사제 생활, 성모님의 그림자처럼 생활했던 분,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라며 예수 성심을 강조했던 다블뤼 주교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님 향한 사랑이 변치 않았던 순교자처럼,
저희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주님 말씀에 순명하는 자 되도록 허락하소서.
마흔여섯 번째 묵주알 (성모송 한 번)
Sketch Story 순명의 묵주알
조선시대 형구였던 칼을 이용했다. 큰 칼은 순교의 모본(模本)이신 예수님의 칼이고, 작은 칼은 순교자 또는 우리들의 것이다. 작은 칼 4개가 각각 색이 다른 이유는 다양한 사람, 신분, 직업 등을 뜻한다. 초기교회에서 순교는 위주치명(爲主致命)이라고 했다. 위주치명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위주치명에는 순교의 참뜻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