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최지현 휘두(1818~1868)
회개와 인내의 십자가

“아내의 권고로 신앙심을 잃지 않았던 순교자”

SketchStory
-회개와 인내의 십자가- 마지막 도안으로 다시 교체
십자가의 가장 자리가 많이 헐어 있다. 이는 부인의 순교 후 이곳 저곳을 떠돌며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자의 삶을 의미한다. 구멍은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관통하고 계심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로써 다시 주님께 돌아감을 의미한다. 십자가 옆이 움푹 파여 가운데에서 모아진 형상은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육이 헤어지고 너덜거리더라도 깊이 통회하고 끝까지 하느님의 끈을 놓지 않는 자는 승리의 십자가를 만들 수 있음을 표현하였다.

 최지현 (崔址鉉, 1818~1868)

최지현은 경주 최씨로, 자는 군실(君實)이다. {좌포도청등록}(左捕盜廳謄錄)에는 그의 세례명이 휘두(揮斗)로 나오는데, 이것이 정확히 어떤 세례명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구산 마을에서 부친 최규겸(崔奎謙)과 어머니 교하 노씨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훗날 용인으로 이사하여 살던 중에 아내 함열 남궁(南宮) 씨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이때가 1860년경이었다. 그 후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때 아내가 먼저 체포되어 순교하자, 그는 박해를 피해 이곳 저곳으로 옮겨 살다가 1868년에 체포되고 말았다.

{좌포도청등록}에 따르면, 최지현은 1868년 윤4월 4일 51세의 나이로 강원도 원주 태생 조종구(趙宗九, 타대오), 경기도 지평 태생 민효원(閔孝源, 나자로), 경기도 광주 태생 홍희만(洪喜萬), 경기도 구산 태생 심칠여(沈七汝, 아우구스티노) 등과 함께 체포되어 문초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의 문초 때에 그는 마음이 약해져 천주교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으나, 이내 마음을 돌려 굳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하였다. 이후 그의 시신은 친척이 찾아다가 그 집 산에 안장했었는데, 1978년에 순교자의 후손들이 구산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