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촌 답사기
구 홈페이지에 2009년까지 게재된 정종득 바오로 신부님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현재 중단되어 있습니다.
제목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기도 소리일 뿐... (수주연 20)2021-04-21 04:11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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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5월 18일 부활 제5주일 주보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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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순교자들의 이야기 : 원경도 요한 ①

            ***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기도 소리일뿐…  ***


  1801년 4월 25일(음력 3월 13일) 여주에서 순교한 이들은 앞서 이야기 한 이중배(마르티노)를 비롯하여 그의 사촌 원경도(요한), 원경도(요한)의 장인 최창주(마르첼리노), 세례명을 알 수 없는 임희영과 정종호 등 5명 이었다. 

  임희영은 체포될 당시까지도 비신자였지만, 교우로 선종한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체포되었고, 옥중에서 함께 있는 교우들에게 교리를 배웠다. 아마도 그는 옥중에서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정종호는 일가족 모두가 열심한 교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00년의 부활 대축일을 지내기 위해 교우들이 준비를 한 곳도 바로 그의 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례명을 알 수가 없어 우리 수원교구에서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지는 못하였다. 

  우리의 신앙선조, 순교자들 중에는 이렇게 세례명(=본명)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 원경도(요한)에 대해 알아보자. 1773년 경기도 여주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사신>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아주 늦은 나이에 혼인을 하였는데, 교우인 최씨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주에서 함께 순교한 최창주(마르첼리노)는 그의 장인이며, 두 사람은 함께 옥살이를 했었다.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원경도(요한)는 24살 되던 1797년에 사촌 이중배(마르티노)와 함께 김건순(요사팟)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런 다음 온 가족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였고, 가족들도 대부분 천주교 신앙을 진리로 수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원경도(요한)는 손수 베낀 교리서와 묵주·성화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친척들을 개종시키는데 노력하여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제삿날이 다가오자 원경도(요한)는 형(원경신)과 의논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1800년의 부활 대축일이 되자, 원경도(요한)는 이중배(마르티노)와 함께 동료 정종호의 집으로 가서 대축일을 준비하고, 남한강변에 모여 부활축제로 하루를 즐겁게 보내다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체포된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경도(요한)의 깊은 신앙은 이 순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사학쟁이들이 무더기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이내 온 고을에 퍼져나갔고, 원경도(요한)의 가족들도 곧 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집은 남한강에서 여주 관아로 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그가 관아로 끌려간다는 것을 알게 된 노모는 집 앞에 나와 있다가 포졸들을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한 번 보게 해 달라’ 부탁하였다. 

  그러나 매정한 포졸들이 이를 들어줄리 있겠는가?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여주 관장은 “얼른 천주교를 버리고 너희를 꾀어 사학에 물들게 한자와, 함께 사학을 한 공범자들을 밀고하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원경도(요한)는 동료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주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밀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천주를 배반하라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그의 애주애인(愛主愛人)의 정신은 외교인까지도 탄복하였다. 이후에도 원경도(요한)와 동료들은 6개월 이상이나 옥에 갇혀 있으면서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당시 옥중에는 후에 체포된 장인 최창주(마르첼리노)도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를 위로해 가면서 '이 환난을 굳게 이겨내자'고 다짐하곤 하였다. 

                                                                                    <계속> 

                                                                              구산 성지 주임 정종득(바오로) 신부